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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cal Communication

기타의사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Hhhi
2021-06-18
조회수 3474

*댓글까지 꼭 읽고 가시길 바랍니다.


구글에 '의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Wikipedia에서 나온 이런 결과가 가장 상단에 나옵니다.

"의사(醫師, medical doctor, physician)는 현대의학의 전문가로서 인체의 질병, 손상, 각종 신체 혹은 정신의 이상을 연구하고 진단, 치료함으로써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고 유지하며 회복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위키피디아라 못 믿겠다고요!>?


Marriam-Webster에 doctor와 physician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doctor

1b : a learned or authoritative teacher

2a: a person skilled in the art of healing specifically  : one educated, clinically experienced, and licensed to practice medicine as usually distinguished from surgery



physician

1: a person skilled in the art of healing specifically  : one educated, clinically experienced, and licensed to practice medicine as usually distinguished from surgery


2: one exerting a remedial or salutary influence




그런데 제가 오늘 병원에서 본 사람은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 듯했습니다. 

제 눈에 비친 그 무언가는 돈, 그리고 실적에 목마른 어떤 죽어있는 생명체가 아니었을까요?



이주 전 학교에서 배구를 하다 제 엄지가 꺾이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큰 문제가 없는 듯하여 딱히 신경쓰지 않으며 살다가 이주가 지났음에도 약간의 통증이 가시지 않자 인대에 문제가 생겼겠구나 하며 오늘 한 정형외과에 내원했습니다. 


의사들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짜여져 있는 환자의 동선.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할 원료를 공급하듯이 진료실과 검사실에 배치되는 환자들. 부품처럼 움직이고 행동하고 꾸민 간호조무사들.

제 진료를 맡은 한 의사 자리에 앉은 어떤 무언가는 x-ray 검사 이후 무의미한 초음파 검사를 진행합니다. 

초음파 검사를 담당하게 된 또 다른 의사 행세를 하는 무언가는 기를 쓰고 초음파 검사기로 이상을 진단하려고 합니다. 초음파에서 유용한 정보를 읽어내기 힘든 저도 화면상의 제 손가락에서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음을 정황상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염증이라는 학교 보건실에서 얻은 결과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진단이 나옵니다. 음 전형적인 병원의 모습이라고요? 이 정돈 뭐 합리성과 효율성,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일부라고 봐줄 수 있다고요?


저는 매일 종일 앉아있다보니 자세가 좋지 못해 허리와 무릎이 가끔 아팠습니다. "정형외과의"라길래 자문을 구하고자 몇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한쪽 무릎의 움직임이 조금 부자연스럽고 나머지 한쪽과 같은 움직임이 아니어서 제 몸에 비대칭이 있다는걸 알았고, 의학엔 문외한인 제가 뭐 골격학? 이런걸 공부한 것도 아니니 어떻게 제 다리의 뼈가 잘못 위치해 비대칭을 발생시키고 잘못된 근육을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끔 약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고요.

손가락 진료보러 와서 다리랑 자세 이야길 하니 당황은 했겠지만 진료실 문 옆에도 본인이 전문가라고 장황하게 약력을 소개하고 있으니, 메디컬 팀으로 일한 경력이 있어 손XX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찍은 사진을 게시해놓고 있으니, 전 대략적으로나마 제 신체에 대한 설명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배운 표준적인 신체에 대한 정보를 설명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라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했죠.


통증과 질문을 던지니 그는 일단 제 다리를 관찰하려 하더군요. 슬개골을 조금 흔들어보다가 현재 저에게 통증이 없음을 알아차린 그는, 즉시 본인이 앉아있던 책상으로 다시 돌아가 '본인은 현재 제 신체에 대해 알 수 있는게 없다. 다음에는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서 와라.'라며 상황을 종결시킵니다.

애써 모른척하는 그 눈빛. 알고 있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그 얼굴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더 치료받게 할까, 어떻게 더 몸의 문제점을 밝혀낼까에만 혈안이 된, 돈에 미쳐있는 모습.

스스로 신체를 설명할 수 없으니 관찰을 부탁한건데, 그들의 역할이 그것인데 그 '본질'에 앞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의사 분장을 한 무언가!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고 유지하며 회복시키는 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건가!?


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달은 저는 더 대화를 잇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오는 진료실 입구에서 보게된  네개의 거대한 메이저 의대 로고들.


병원 건물에서 나는 그 썩은 악취에 저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전 화가 났습니다.

제가 부담한 병원비가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저 인간 소외의 벽을 또 보강하고 있는 벽돌들을 찍어내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그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가 불쌍했습니다.




Degree와 Licence, 그리고 career가 당신들을 의사로 만드나요?

의사의 명칭 이전에 당신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자본'이라는 가치가 그렇게 당신들을 drive 하나요? 자본은 그저 하나의 가치가 아닌가요? 그래요 그건 당신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만큼 의미가 커지고 가치있어지는 'just mere value' 아닌가요? 다른 가치를 더 돌아볼 순 없었나요? '자본'이란 가치가 나머지들로부터 top priority를 가지게 한건 당신들이 아닌가요? 이 세상을 만든건 그렇게 개인성을 잃고 crowd로 들어가 본인을 잃어버린 '당신'이 아닌가요?(이건 모든 인간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 기형도, 「홀린 사람」


목소리가 되세요. 외롭고 고독한 길이지만 군중을 벗어나, 그 벽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 하나의 사람이 되세요. 누구도 듣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는 것 같지만, 홀로 박해 받는 것 같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되어 외치세요. 저 군중 속에서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인성을 잃었다면 그 빈자리는 결국 사회의 가치, 이념, 편견 따위의 것들이 채웁니다. 그러면 더 이상 우리는 인간이기 어렵고요. 의문조차 제기하기 힘든,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발악조차 저지받는 세상.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핍박받게 하여도 스스로를 잃지 마세요. 그래야만 사회 속에서 한 인간이 되어 개인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살 수 있어요. 

인간 둘만 모여도 그건 사회, 어쩌면 이 싸움은 사회를 만들어가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요.?





근데 이런 이야기를 왜 여기와서 하냐고요?

여긴 의대갈 학생들과 의대 재학생, 그리고 현직 의사분들까지 모인 공간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흔치 않은 공간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니 참 감사하기도 하네요! 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저 벽돌들을 맨땅에서 부술순(...) 없을테니 앞으로 우리가 그 벽을 타고 넘어다닐 사람들을(parkour guys...)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야죠. 누가 벽 타고 다니다보면 위에 올라가서 쿵쿵거리기도 하면서 작용-반작용으로 벽도 부서지기 시작할거에요. 그럴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자유!


 제가 존경하는 황준규 선생님께서 해주신 강력한 말씀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이 말에 내면의 울림이 있었다면 꼭!!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게시글-코드 #2020001의 글을 읽어주세요!! 이걸 읽는 당신은 인간일텐데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period)에서 알 수 있듯이 의사를 직업으로 가지기로 했다면 의사라는 단순한 명칭 하나가 아니라 그 역할이 더 소중함을 깨달으시면 좋겠습니다. 이걸 깨달고 실천하시는 분들만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짧은 인생이지만 정말 제가 인생에서 만난 의사는 딱 한 분이셔서 참 세상에 의사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언젠간 의사도 고가의 부품에서 저가의 부품으로 전락합니다. 기계는 인간보다 빠르니까요.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추구하려고 하세요. 기계랑 우리를, 물질과 우리를 동일선상에 놓고 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세상에는 '의사의 역할'을 수행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 보이네요! 궁금하시면 유튜브에 이국종 교수님께서 4년 전에 진행하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찾아보세요. 파쿠르를 하시고 계세요. 그리고 만약 영상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다면 말로 평가만 하려 하지 말고 *뛰어들어 동참*하세요. 어떤 형태로든요. link






마지막으로 아까 그 무지막지하게 큰 대학 로고가 준 충격이 가시지 않아... 이곳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인 만큼 꼭 의대 지망생들에게 아니면 어쩌면 이미 의대 진학이란 문턱을 넘은 재학생분들까지 포함한 future 의사들에게 이 말을 던지고 글을 싶습니다. 제가 왈라왈라 두서없이 이야기한 말들 다 잊어도 좋으니 이것만큼은 꼭 스스로에게 질문 부탁드립니다.


"(메이저)의대 안가도 의사라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거기 가도 의사가 못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해내려고 하는 것은 의사의 역할입니까?(출세가 아니라요?)"

꼭 본인의 내면에 이 질문을 해보세요. 본인의 꿈이 명사인지 동사인지 알 수 있을거에요!! 후자라면 정진하시길! 그리고 만약 전자라면 어서 본인을 돌아보고 자신을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찾으세요! (having 'whole lotta money' in my life류의 두근두근 말고요!! 그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주는 일은 세상에 많아요) 메디친 사이트의 멘토친 글들이 도움이 될겁니다! 우리 함께 저 벽을 부수어 봅시다!







보잘것없는 긴 글과 나름의 푸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에서 무언가라도 생각의 씨앗을 얻으셨다면 좋겠네요. 추가적인 생각과 의견도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p.s.의사라는 직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기 있는 특정 전문학교와 특정 직업을 본인의 목표와 목표했던 직업의 이름과 바꿔 생각해도 본질은 동일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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