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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멘토[PSTP] 올해 수능을 본 친구들에게

황준규
2021-11-21
조회수 342

수능 결과가 만족스럽건 만족스럽지 않건, 합리화의 길로 빠지지 마세요. 합리화(rationalizing)에 대해, 철학자 E.Mori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합리화는 경험에 의한 논리 과잉, 그리고 복합 현실에 대한 거부라는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1. ‘경험에 의한 논리 과잉’

자신의 경험보다 강렬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수능처럼, 여러분이 최소 1년 혹은 그 이상 자신의 땀을 흘린 결과는 폐부로 훅하니 들어오지요.  그러니, 이번 수능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경험을 한 학생은, 거기서부터 자신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쉽습니다.


수학선생인 제가 보기에 (적어도 수학영역에서만큼은) 이번 수능이, 수능의 가치를 다시 회복한 굉장히 건강해진 수능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수험생의 이번 수능의 상대적 위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매우 좋은 성취이자, 지식 기반 사회에서 그 학생의 미래에 대한 좋은 징조임에 분명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능은 '수학능력시험'의 줄임말이며, 수학(修學)능력이란 Scholastic Aptitude를 번역한 말입니다.   scholastic은 scholar에서나온 말입니다. 


스콜라? 학자라고요?  지식 기반 사회는 우리 모두가 일정 정도 학자와 같은 능력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박사학위가 있건 없건, 어느 대학의 교수건 아니건, 전문직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에요.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정보를 처리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이가, 남을 등쳐먹거나, 부모 찬스 없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최저 임금 말고는 없을 거라는 현실.  그게 결코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 경향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가 한국인 것 같습니다.  


수능을 잘 본다는 건, 대학 이후에 학문적인 길을 걸어갈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올해의 수능을 잘 보았다면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성취를 자랑스러워 하세요.  그 노력을 계속 앞으로도 투영하고 나아가세요.  


허나, 수능을 잘 보았다는 그 경험에서 논리가 과잉으로 치닫으면 안 됩니다.   수능 수학영역이 만족스러웠다고,  내 수학공부는 모두 옳았다는 논리적 재구성을 한다든지, 아니면, 자신을 그 방향으로 이끈 계기가 된 수학선생이나 커리큘럼의 모든 말이 옳거나, 더 나아가서 그 말과 공부법이 모두에게 옳을 거라고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과잉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멘토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굉장히 어려운 일을 떠맡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는 수능이라는 시험이, 한 학생의 scholastic aptitude의 한 측면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상당히 객관적인 척도이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박도순 교수님이나 김명환 교수님 등, 교육학자와 수학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속칭 '킬러-비킬러 이분법'과 'EBS 반영비율 70%’, ‘영역별 만점자 비율 1% 유지’같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포퓰리즘적 강박을 훌훌 벗었으니 더더욱요.


그렇지만,  잊지마세요.  모든 시험이 그렇듯, 한국의 수능시험 또한 그 학생의 수학능력 중 어느 한 부분만을 보여줍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수학영역에서, '계산능력-이해력-추론능력-문제해결력'을 평가한다고 명시한 것은, '창의력'이나, '의사소통능력'을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명확한 한계를 스스로 긋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학생이 수능을 잘 보았다는 건, 그저 수학능력의 한 부분의 한 측면이 잘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창의력과 의사소통능력 같은 더 귀한 능력은 수능에서 아예 평가조차 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능력은 수학능력이 다가 아니며, 인간은 능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망각하면 안 됩니다.


한편, 수능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는 경험을 한 학생은, 대체로 그것은 절망적인 경험임에 분명함으로, 거기서부터 강렬하게 자신의 역사,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세계관까지 재구성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물론, 그것 자체로 잘못이라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항상 그렇지만 과한 게 문제이지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건 그저 하나의 측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지식 기반 사회에서 학생이 어떤 선택을 하건, 학생이 발전할 길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열려 있지요.  


위의 '경험에 의한 논리 과잉'은 수학 그 자체에도 있습니다.  수학자 B. Polster는 그 예로 다음 그림을 들었습니다.  각 그림은 원 위의 점들을 연결한 모든 할선으로 분할된 원 내부 영역의 개수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합리화했지만, 결국 무언가에서 현실과 괴리되었는지 말해 보세요.  


<B. Polster, "Q.E.D. : Beauty in Mathematical Proof", Walker & Company, 2004, p2>



2. ‘복합 현실에 대한 거부’

수능을 잘 본 학생은 잘 본 학생대로, 못 본 학생은 못 본 학생대로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으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벌써 수능이 끝난 지 삼일이 지났네요.   아직도 무기력하다는 것은 1.에서처럼 여러분이 이번 수능이라는 경험을 통해, 지나치게 스스로에게 논리적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E. Mori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복합성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 그것은 모든 믿음을 빼앗고, 모든 희망 모든 용기를 앗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복합적 사유는, 닫힌 사유 특유의 방어 기제들을 상실함으로써, 일체의 활력과 일체의 투쟁성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 속에 닫혀 버릴 때 이성(理性)은 광기(狂氣)로 화한다는 것을, 합리화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글을 읽은 학생들은 위의 '광기'라는 말이 지나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수능 못 보고 자신을 탓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의 인생이 쓰레기라든지, 자신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하며 무력감에 빠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현실이 얼마나 복합적인 거냐는 것에 대해 애써 눈을 감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수능 못 보고 이 사회 시스템을 탓해요.  그래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할 때도 있고요.  실제로,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잘못된 지점이 있고, 개선이나 혁신되어야 할 지점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어느 정치인 탓이니, 나라가 망할 징조라느니 하는 것 역시, 사회라는 현실이 얼마나 복합적인 거냐에 대해 스스로 눈을 가리는 것이지요.   그것은 '신 아니면 악마', '믿음 아니면 지옥불'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이원론적 사이비 종교현상과 비슷해집니다.  그것을 E.Morin은 3세기 후반 이란과 서구 세계를 휩쓸었던 종말론적 종교 지도자 Mani의 이름을 따 '마니(Mani)교'라고 불렀습니다.  


"합리화와 마니교의 결합은, 세상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 모든 실패, 모든 재난을 사악한 힘들의 음모 탓이라고 지칠 줄도 모르고 끝도 없이 설명하려 드는 태도를 낳는다.  마니교적 합리화는 난처한 사건에서 우연과 정황, 자연적 원인들, 더 나아가 자신의 과오들을 결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마니교적 합리화에 빠져 있는 사람은 '난처한 사건에서 우연을 결코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수험생의 수능 점수는 필연인가요?  우연인가요?  


답부터 말하자면, 수험생의 수능 점수는 굉장히 필연적이며, 또한 굉장히 우연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므로 여러분이 잘 들어야 합니다.  


수험생의 수능점수는 굉장히 필연적입니다.  그 이유를 여러가지 말할 수 있습니다.  수능 시험은 평가하고자 하는 능력이 명확한 시험이며, 교육과정 자체에 굉장히 충실하고, 미국의 ETS같은 회사 같이 문제은행 형식으로 내는 게 아니라, 매번 학자들이 합숙하며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시험입니다.  그러니, 앵무새처럼 유형암기 훈련이 잘 먹히지 않는 특징이 있어요.  그러니까, 모의고사 점수가 어떻건, 기출 유형을 앵무새처럼 외웠건 아니건, 그저 수능 기출과 비슷한 느낌을 주도록 이리 변형, 저리 변형한 속칭 '실전 모의고사'나 'n제'들을 많이 풀었건 말건 실전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별 도움을 받지 못해요.   반면에, 옳은 방향으로 그 과목 자체의 재미를 느껴가며 한발 한발 나아가면 초1부터 고1까지 수학적 성과에 따라 개인차가 나기는 하지만, 그 결과를 얻습니다.  이런 시험을 한국사회에 안착시킨 것은 세계적인 성과입니다.  불과, 여러분 부모님 세대때는 학력고사 같은 암울한 유형암기+교육과정 외+ 일본대학문항 변형한 것 같은 시험이었는데 말이죠.  전 세계 교육학회에서 한국의 수능은 박수를 받는 시험이에요.  그러니, 어떤 수험생이 수능만 잘 나왔다면 거기에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수능만 망쳤다 해도 거기에도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허나, 한 편으로 수험생의 수능점수는 굉장히 우연적입니다.   그 이유 어렵지 않아요.   재작년 수능의 경우, 포항 지진 때문에, 평가원이 수능을 두 세트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홀수형', '짝수형' 이런 게 아니라, 아예 별개의 두 세트를요.  그러니까, 수능 수학영역 같으면, 총 30문항인데, 애초에 총 60문항을 만들고, 그것을 두 세트로 나누어 한 세트만 수능을 치게 하고, 나머지 한 세트는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쓰려고 했던 거지요.   예를 들어, 올해 수능을 평가원이 그렇게 두 세트를 만들었다고 가정합시다.  이번 수능 원점수 100받은 학생이 있다 하면, 그 친구가 수능 다음날 다른 한 세트를 보면 100이 나온다는 보장이 있나요?  수능을 응시해 본 여러분은 모두 압니다.  그런 보장은 절대 없다는 걸요.   수능 수학영역은 매우 많은 우연적 요소들이 지배한다는 걸 수능을 치뤄보면 압니다.   30문항을 100분에 풀어야 한다는 시간 제약 때문인 것도 있고.  당일에 네 개 혹은 다섯 개 영역을 응시한다는 것 때문인 것도 있고요.   


한국 사회가 정말 meritocracy쪽으로 흘러 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러분 세대의 인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게 자꾸 느껴집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성취에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있어요.  특히, 외면적이고 수치화되고 결과로 드러나는 그런 성취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너무 추종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마세요.  '성공하는 자의 비결'운운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여러분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밴드 N.EX.T의 리더였던 신해철은 ‘내가 성공의 비결을 말해주겠다.  내가 살아보니 그건 우연이다.  (청중들이 웃으니까) 난 진지하다.  성공의 비결은 노력이라고?  개소리 집어쳐라.  성공의 비결은 우연이다.  그러니, 너의 인생이 성공과 실패로 얼룩지게 방치하지 마라.’했었죠.  


E.Morin의 말도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어떤 결과는 생각보다 깊은 우연의 경우가 많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 어떤 성취를 이루어도 그것이 다 자신의 노력 때문인 양 까불 수 없습니다.  어떤 실패를 만나도 그것이 다 자신의 탓이라고 한탄만 할 수도 없고요.  노자는 도덕경에서 '天地는 不仁'이다 했지요.  E.Morin은 '현실의 어떤 부분은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





3. 그러니, 거기에 더 머무르지 마세요.  허허롭게 떠나세요.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면 남은 인생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아요.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면 남은 인생이 위축됩니다.   수능 점수? 저야 일개 학원 강사이니 여러분이 그 한 문항을 위해 온 실존을 걸고 달리기를 원하고 독려하는 게 직업인 사람입니다.  그 땀과 눈물을 사랑하죠.   그게 진실이 아니면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이겠냐고 생각할 때도 있을만큼요.


허나 E.Morin에 의하면, 그 땀과 눈물이 서린 수능 점수도 한편으로는 ‘실존의 수천 가지 모습을 하나로 환원하여 마구잡이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남은 인생의 행과 불행은 훨씬 더 복합적이며, 굉장히 많은 필연적 인과와 함께, 또한 굉장히 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러니, 자신의 결과가 좋았다고 무언가가 증명되었다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아직 거의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점수로 증명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사소한 것입니다.   인생은 증명에 대한 것이 아닐 뿐더러, 혹 무언가를 증명하더라도 그것은 헌신과 희생으로 증명하는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타인을 특히, 약자와 소수자를 경멸하는 추악한 기성세대로 자라게 됩니다.  그 경멸이 인생의 한 국면에서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오지요.  자신의 좋은 결과에 우연적인 요소가 있음을 알고, 남에게 관대하며, 남에게 더 배울 게 없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거기에 머무르지 마세요.  그러다, 자신을 경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자신의 결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타인을 타인의  결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 경멸이 인생의 한 국면에서 언젠가 세상에게 돌아가지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박수를 보낼 때 드러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세상에서 당신이 박수를 받지 못할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어느 국면에서  Plan B를 실행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Plan B가 없는 게 부끄러운 거지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인생 내내 Plan A만을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에요.   


어느 쪽이건 자신을 닫지 마세요.  스스로와 대화하세요.  대화할 정도 상황이 아니라면, 흥분 혹은 절망이 가라앉을 때까지 본인에게 시간을 주고 잘 먹이고 잘 재우세요.  그랬는데도 대화가 잘 안 된다면, 책을 읽으세요.  세월이 검증한 고전들을 읽으세요.  


남은 입시 일정이 있다면 물론 노력을 다 하세요.  


어느 경우건, 물질적이건, 심정적이건 가족이 도와줄 수 있다면 미안해 하지 말고 가족의 도움을 받으세요.  그게 가족이니까요.  


어떤 이유건,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너무 슬퍼 마세요.  다행히 여러분은 스무 살이 다 되었거나 넘었고 결국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저 이 외로움과 슬픔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더 좋은 가족을 만들면 됩니다.


자신이 연약해 보이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것을 더 사랑하기 마련인데요!  게다가, 우린 그만큼 타인의 외로움과 슬픔을 알게 된 것이며, 비로소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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