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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칼럼[PSTP] 작은 날개의 새

황준규
2022-11-21
조회수 1031


수능 끝나고 여러 입장의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물론, 6평, 9평 보다 수능을 잘 본 학생들의 소식이 있습니다.  

허나, 대학별 고사가 한창이고, 정시원서도 쓰기 전이고, 등급컷도 나오기 전인 지금 시기의 특성상

이렇게 잘 본 학생들은 자기 할 일에 바쁘고

결과가 어느 정도 정해지면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은 상대평가이니, 6,9평보다 수능을 잘 본 학생이 있으면

6,9평보다 수능을 못 본 학생이 그만큼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에 주로 연락이 오는 학생들은 그런 경우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학원가

이 사교육이라는 곳은 강퍅해서

실적을 광고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실적'을 내지 못한 학생들은 죄인처럼

숨어서 울분을 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시를 준비한 지난 기간

게으르고 태만하고

허세만 부리고 딴 짓만 하고

말만 앞서고 실행을 하지 않던 학생들은

이미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테니

그런 친구들에게 굳이 더 해 줄 말은 없습니다

자책은 건강한 겁니다.

자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지요.


문제는 지난 시간 동안 눈부신 땀을 흘린 학생들 중

지난 목요일에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들이켜야 할 게 쓴 잔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이들의 슬픔.


아니, 울분을 토하는 건 차라리 건강한 거죠

그냥 멍하니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는 학생들에게 온 이메일

이 글은 거기에 대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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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정말 옳은 방향으로 공부 자체를 깨달으며

배우고 익히는 옳은 길을 걷는 학생은

그 자체로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선생이 학생을 가르친 세월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그게 보입니다.


가끔 학생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아는 선생들 면면을

가벼운 얘기이건 무거운 얘기이건

서로 나눌 때가 있듯이

선생들도 학생들에 대해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선생들은 '얼굴에서 빛이'나는 학생에 대해

꽤 비슷하게 느낍니다.  물론, 반대로 누가 꾀를 부리며

누가 사실상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있는지도 느끼지요.

'얼굴에서 빛이' 날수록 수능 잘 볼 확률이 큽니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우리 선생들 모두가 아는 게 있습니다.

우리 선생들은 그 '얼굴에서 빛이' 나도록 열심히 하는 학생이 전부 수능을 잘 보는 것은 아니며

'얼굴에 꾀가 덕지덕지'한 학생이 전부 수능을 못 보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학생들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얼굴에서 빛이' 나는 학생 중에 예상 외로 시험을 못 볼 학생이 누구인지

게으르고 태만한 학생 중에 예상 외로 시험을 잘 볼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 걸 조금이라도 안다면,

학생들에게 신비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조언을 해 줄 수도 있겠지요. 

그런 神妙한 것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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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또 배워서 생기는 공허함을 깊은 생각으로 이겨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생기는 위태함을 바른 배움으로 이겨내는

그런 훌륭한 학생도 수능을 못 볼 수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에 천지는 不仁이라 하듯

아무 이유 없이 수능을 못 볼 수도 있어요.  

거기에서 어떤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운이 어떠네 저떠네 이러지도 마세요.


다만, 당신의 그 노력에 대해 책임을 지세요.


책임이라뇨? 하는 학생들이 있겠지요.


우리가 강아지 한 마리를 사랑해도

그 강아지의 이후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듯


학생이 흘렸던 노력과 땀과 그 빛

분명히 아름다웠던 그것의 근본과 영혼을 지키세요.


아마 수능 결과가 좋았으면

학생은 주위에서 축하를 듣고

지난 시간을 잊고

'의사'가 되느니, 명문대에 진학했느니

이런 걸로 자신의 인생이 제자리에 놓였다 여겼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이 또한 허상이라는 걸 압니다.

명문 의대에 들어가 보았자

다시 모든 욕망과 질투와 시기와 열등감과 불안이 

먼저 자리에 와 있는 걸 보고야 말테니.

어떤 친구들은 명문 의대에 들어갔는데

정작 자기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니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기도 합니다.


학생이 그렇게 의대를 가기를 원해서

지난 한 해를 투여했다면

그렇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더 찾았으면 합니다.


의사가 남을 돕는 모습이 좋아 보였으면

세상에는 남을 돕는 더 절실한 상황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남을 전혀 돕지 않는 의사가 많다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 없지요.)


의사가 지적인 작업을 종합해서 환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으면

세상에는 더 창의적이고 더 심오한 지적 판단이 필요한 직업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사실 그다지 지적이지도 않고 별 판단이라 할 것도 없는 일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비참함과 懷疑에 시달리는 의사도 많다는 얘기는 굳이 안 하겠습니다.)


의사가 남들에게 부러움 받고 인정받는 모습이 좋아 보였으면

세상에는 남들의 인정보다 가치 있는 것이 더 많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가질 수록

우리는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라는 건 꼭 말하고 싶습니다.)


.............................................



난 학생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아요.

그래서, 학생이 수능을 못 보았다는 소식에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Coldplay의 이 노래가 그래서 생각 난 건지.

신지훈의 cover를 들었습니다.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Stuck in reverse 


 When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Cause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What could it be worse?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P.Piccasso - Bird (1948)>



학생의 빛을 꺼트리지 않기를

슬픔이 당신을 압도하게

고통이 당신을 팽개치게 하지 말고


"내면의 빛을 따라 집으로 돌아 오길

 뼈 속 깊이 불을 불이기를"


 남아 있는 건

 쓰디쓴 잔

 거친 앞 길

 그리고 당신을 의심하는 주위의 

 눈빛 뿐일지라도


 당신은

 당장이라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권리


 당신은

 당신 제외한 

 세상 전부와 맞설 수 있는 광기


 너의 품 안

 작은  날개의 새


 슬퍼하는 건 내가 할 일

 당신이 걷는 새벽

 바람이 일고 개가 짖는 

 아직 다 보이지 않는 길


 남들의 認定보다 가치 있는 것

 그곳으로 永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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