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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멘토[PSTP] 공부법에 간절한 친구들, 그리고 이곳의 '대학생 멘토'님들께

황준규
2021-02-14
조회수 245

흔히 수험생활을 시작할 때 '수능 공부법'을 알아야 한다고 막연히 느낄 것입니다.  마치,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가 어느 트랙으로 어디까지 뛰어야 할 지 보는 것처럼 말이죠. 


허나, 제 경험으로는, 수험생들이 공부법을 정말 절실하게 고민할 때는, 수험생활을 시작하고 3,4주쯤 지났을 때입니다.  공부법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려본 학생들이, 그 희망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부서지는 때.


프랑스 현대철학자 E. Morin은 '이십세기를 벗어나기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실을 찾아내려 할 게 아니라, 오류를 찾아 내야 한다.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 것에 희망을 걸 준비가 되어 있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우리를 기만하는 것들에 대해서 절망을 해 보아야 한다.' (p253)


알겠죠?  우리는 좋은 공부법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좋지 않은 공부법을 피하는 정도로 만족해야합니다.   좋은 공부법을 찾(았다고 믿고 싶)은 수험생은 그 공부법만 따르는 걸로 스스로의 불안을 잠재우며 더 이상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사고를 멈춘 곳에서 사고력이, 게다가 새로운 사고력이 생길 리가 없지요.   이게, 애초부터 문제풀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돌아 볼 줄 모르는 습관까지 겹치면, 사고가 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는 걸 학생 본인이 자각할 수 있을 지경이 되는 것도 종종 보입니다. 


'모든 진실은 존재의 특정한 조건들과 한계들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은 그 조건들과 한계들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진실일 수 있지만 그 조건들과 한계들 밖에서는 곧 사라지고 만다. (삶이라는) 투쟁에 있어서, 우리는 신화(myth)와 맞닥뜨리게 되고 극도로 복잡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   그것들은 '진정한' 것이기 때문에 환상을 창조하고 거짓말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화시켜버리거나, '신화들은 거짓된 것'이라고 탈-신화화(demythlogizing)하기만 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사고의) 어떤 개혁이나 혁명도 심사숙고하지 않게 위해 들먹여서는 안 되고, 마침내 그 개혁과 혁명의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 언급되어야만 한다.' (p259, 295)


멘토들은 살 밑에 피가 흐르는 더운 인간이니, 인지구조가 다 다르고, 어릴 때부터 학습해 온 역사, 미래를 향한 감정, 현재를 바라보는 위치 등, '특정 조건들과 한계들'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맞아요.  여러분도 '공부법을 맹신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는 정도는 이미 아시겠지요.  그러나, Morin의 말은, 그런 '탈-신화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만 생각하고 싶어서 공부법을 찾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공부법은 '이렇게 공부하면 되니까 그만 생각하자'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법은 더 많이 생각하기 위한 도구이어야 하고, 오직 그 때만 의미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스템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치부를 나열하고 전시하는 데 있으며, 시스템의 가장 큰 치부는 자신의 미덕을 나열하고 전시하는데 있다.' (p292)


흔히, 대학생 멘토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고, 후배 수험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순수한 선의에서) 자신이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저렇게 효율적으로 그렇게 흔들림없이 공부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본인이 어떻게 흔들렸으며,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던 것이 어떤 시기, 어떤 문항들을 만났을 때 처절하게 실패하였으며, 자신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습관이 어느 시기, 어떤 문항에 이르러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았는지 기억을 더듬어 얘기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적 깊이가 없으면 멘토링은 그저 자신을 뽐내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곳의 대학생 멘토님들이 그 점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멘토링이라는 것도, 수험생의 사고에 시스템을 더해주는 것일테니까, 결코, 결과의 성공으로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지 마세요.  오히려, 공부법이란, '줄 위에 서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는 광대'처럼, 끊임없이 고뇌하게 되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말해 주세요.  저나 대학생 멘토 여러분이나, 다 흔들리고 고뇌하고 의심하고 좌절하면서 공부했었습니다.  


'인문주의적 지식이 도처에서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에 밀려 후퇴하고 있다.  총체적 사고는 곧 추상적 사고로 타락한다.  (어렵지만) 모든 자명함과 결별하라!  지식을 반성으로 충전시켜야 하고, 반성을 지식으로 충전시켜야 한다.' (p311, 321, 323)


공부법은 총체적이므로, 추상적으로 타락하기 쉽다는 걸 항상 경계합시다.  수험생은 구체적인 문제들의 다양한 상황들에서, 동료들(math-gang)과 논의하며, 결국 선생에게 물어야 합니다.  멘토님들은 멘티들이 어떤 어려움을 호소할 때, 거기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바로 제시하고 싶은 경우가 많을 겁니다.  허나, 많은 경우,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고, 그런 어려움을 호소하게 될 때까지 어떤 지적 혹은 감정적 경험이 있었는지를 찬찬히 묻고 들어주는 게 더 좋을 때도 많습니다.  수학이 인문주의적(humanistic)이라 말하는 건 과장이겠지만, 수학학습이 인문주의적이라는 건 과장일리 없으니까요. 


문학, 사학, 철학을 생각해 보세요.  결국, 그 분야의 재미와 맛을 느끼고 몰두해야 잘 하게 됩니다.  사고력을 지향하는 수능 수학은 그 점에서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능 국어영역도 마찬가지일거라 전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공부법에 대한 환상을 깨라'고 말하면, 애써 이 '메디친'사이트까지 들어온 학생들이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Morin은 결국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잃어버리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는 (기계적인) 진보의 약속을 잃었다.  그러나, (기계적이고 직선적인) 진보라는 게 사실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은 사실 매우 커다란 진보이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눈사태 같은 진보를 불러 일으키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사건의 주역들인지도 모른다.'  (p445)


 그렇고 말고요.  진짜 진보(progress)는 눈사태(avalanch) 같은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까요.


'모든 게 불확실하다고 느낄 때 가장 충만해야 할 것은 다음이다.

- 관습적이고 폐쇄적인 사고에 저항하는 것

- 주위의 동료와 새로운 관계를, 대안적 삶을 형성하는 것

- 사고의 원칙을 세우는 것,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의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할 목적으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미래를 내다보고 씨를 뿌리는 것, 마치 연인들이 서로를 변모시키고 그렇게 일체감을 느껴가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결국 되돌아오게 된다. ( p462, 465)'


수험생 여러분, 남은 이백하고도 며칠, 좋은 지식과 좋은 관계를, 좋은 선생과 좋은 관계를, 좋은 동료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세요.  농부는 배고프다고 씨앗들을 입안에 털어 넣지 않습니다.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검은 들판에 뿌려지는 씨앗들.  그렇게 씨뿌리기-사랑하기(seeding-loving)가 인생의 어느 국면이건 우리가 만나는 것입니다.  진실은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죠.  진실은 이미 자신의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우리가 준비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볼 수 있는

겁니다.  난, 고3때 외로웠던 책상 앞에서 어느 날 그 진실을 느꼈어요.  그걸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니 잊혀지지 않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연애의 기술'이니 '이성에게 잘 보이는 방법' 같은 것에 관심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진정 마음 깊은 곳부터 사랑한다면, 그것에서 나와 세상 전부를 다시 발견하게 되고, ‘썸 타는 법’ 같은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왜나면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것말고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 모든 공부법이 무색해질때까지 노력합시다.  Goethe가 ‘공부하는 자는 항상 순수한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그거일 거라고 전 추측해 봅니다. 


자신의 내면과 연결되는 자여

바로 그렇게 세상과도 연결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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