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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멘토[PSTP] 빈 벌판, 맨발

황준규
2021-06-02
조회수 517


자기 자신을 믿고 싶다는 학생을 보았습니다

그래요 먼저 자신이 믿음직스럽게 행동하세요

초월적인 노력보다 더 어려운 건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두세 달 하고 나니 지칠 거면 왜 굳이 의대를 가려 합니까

거기 가면 몇 년 아니 거의 십 여 년을

보수적인 면에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의학교육 시스템에 갇혀 

반복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시험 속에 

평가를 받으며 살아야 할텐데요


우리가 타인을 아무리 믿고 싶어도

그 사람이 믿음직스럽게 행동을 해야 

그것도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진실 되게 행동한 게 쌓여나가야

비로소 조금씩 천천히 믿게 되지

그 사람이 말 몇 마디 요란하게 혓바닥을 놀려봤자

중요한 순간일수록 믿고 의지하지는 못하게 되는 것처럼요


사고력도 육체 노동과 다름 없는 정직한 땀입니다

육체 노동이야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그의 노동이 옆에서 쉽게 보이지만

정신 노동은 그렇지 않을 뿐

그 결과가 정직하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흘려야 할 땀 앞에 스스로 당당하지 않은데 무슨

공부법이니 학습법이 의미가 있나요


취미를 넘어서 직업으로서 목표를 생각하며

악기를 배워보거나

운동을 해 본 적이 있는 학생들은 알 겁니다


일가를 이룬 연주자나 운동선수들의

쉽게쉽게 하는 듯한 동작이 사실 얼마나 어마어마한 땀을 요구하는지 말이에요


능수능란함 뒤에는 기본기에 대한 얼마나 많은

반복 속에서 자신을 이겨냈는지 말이에요


들쑥날쑥한 생활로 자신이 자신에게 실망할 때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아니에요

왜냐면 당신은 어느 조언도 실천할 준비가

안 되어 있을테니까요


알아가는 즐거움 없이

배울 수 있는 운명에 대한 기쁨 없이

내 노력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당당함 없이

수험생활을 하는 건


마치 물 없이 사막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강인한 자도 금세 비틀거리게 돼요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


그 따위로 노래하지 말라고

자유를 향해 비상해본 자는 다 안다고

그 날아오름 뒤에

피냄새가 있다고


어느 으리으리한 모임에서 만난 여류 시인의

그 천사 같은 눈빛

허나 그 눈은 피를 흘리지 않고 있으니

거짓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W.Blake의 시를 완성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자들을 경멸할 수 있게 되었다고


김수영이 노래한 적이 있지요


그러니

땀 흘리는 법 묻지 마세요

땀을 흘리세요

피 흘리는 법 묻지 마세요

피를 흘리세요


여행 갈 때

차 뒤 트렁크에 짐 우겨 넣듯이 하는 걸

공부라 부를 수 없다고 A.N.Whitehead는 말했었습니다


배운다는 건 T.Yeats 말대로

마른 벌판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선생을 소중히 여기세요

선생은 여러분 대신 생각해 주거나

이제 그만 사고하고 여기부터 외우면 된다고 선 그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자들을 경멸하지 않고서는 

선생을 찾아 낼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영원히 선생을 찾아왔고 

지금도 찾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여러분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사람일겝니다


G.Polya는 ‘수학을 배우는 것은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독학으로 수학 배우겠다는 건

독학으로 수영 배우겠다는 것과 같아요


인강으로 수학 배우겠다는 건

인강으로 수영 배우겠다는 것과 같아요


대면할 수 있는 선생

문항의 풀이뿐만 아니라

수학을 대하는 태도를 따라 배울 수 있고

근본적인 발상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고

그 질문에 미리 혹은 나중이건 대답해 주거나 생각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주는 선생


선생의 학력이 어떠냐 

선생이 유명하냐 

옷을 뭘 입고 다니냐

차를 뭘 타고 다니냐

어디서 강의를 하느냐 그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홈쇼핑에서 살 수가 없어요

옛날 어르신들은 좋은 선생에게 배울 기회만큼 귀하게 여긴 것이 없어요


잘 팔린다는 책 쌓아 놓고 그까짓 거 몇 회독해서 

없던 사고력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잘 팔리려면 읽기 쉬어야 합니다 

수학이나 물리, 철학 같은 본격적인 학문을 다룬 책 중에

읽기 쉬우면서 좋은 책이란 거의 없습니다


Whitehead는

가르치기도 쉽고 배우기도 쉬운 책이 있다면

그런 책은 사그리 모아 불질러 태워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가르칠 가치가 있고 배울 가치가 있는 책은

가르치기도 어렵고 배우기도 어렵다고 했지요


A.J. Bishop은

선생도 아닌 사람이 교재를 집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오만한 발상이며

선생이라는 사람이 교재를 집필하지 않는 것은

이미 굴종적인 자세라고 했지요

그래서 공교육이라는 정부 시스템이 강화되거나

사교육이라는 기업 시스템이 강화되는 걸 경계했습니다

시스템이 효율적이 되면 될 수록, 시스템은 선생을 통제하려 들고 학생들은 점점 덜 배우게 된다고 했지요


H.Fredenthal은

축구 경기 구경하듯이

수학 강의 구경하고 있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수학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지요

외울 필요가 없을 때까지 자신의 이성을 납득시키는 게 수학이니까요

외울 게 남아 있으면 수학이 아닙니다


왜 그런 문항을 풀어야 하고

왜 그런 문항을 그렇게 풀어야 하며

왜 그런 문항을 그렇게 푼다는 생각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의심하지 않고


그저 문제유형을 암기하고

문제풀이를 반복하다보면

점수가 오를 거라는 생각


그건 산업화 시대 인구폭등 대량생산식 교육을 겪은 여러분 부모님 세대 

90년대 학력고사나 사법고시의 환상이 현재의 여러분에게 일그러져 투영된 겁니다


그런 책을 쓰는 사람

그런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책이 팔리고

그런 강의가 팔리는지 의심을 안 해 본 사람들이에요

Sartre는 기존 가치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자야말로 가장 지독한 속물(snob)이라 했습니다


잊지 마세요 지금의 기성 세대가 여러분 나이일 때는 

이 나라에 지켜야 할 교육과정이나

평가기준?  그 따위 없이 그저 그냥 일본 본고사 문항에 물타서

미국 대학교 1학년 교재 적당히 비꼬아서

마구잡이로 출제하던 때에요

(아 그래요 교육과정이라는 게 이승만 때부터 있기는 있었죠

 아무도 안 지키던 교육과정

 마치 전태일 때 근로기준법이 있기는 있었던 것처럼요)

마구잡이로 출제했으니 마구잡이로 공부했었지요


한국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후

재빠르게 그나마 나라다운 모습을 갖추었으니

90년대 중반 학번 이전 기성세대는 현 수능 같은,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시험에 대한 체험이 전무합니다

그들이 받은 학부의 대학교육이라고 해보았자

족보(기출문제) 유형암기가 다였죠

그런 분들이 지금의 내신지옥을 만드셨구요


적어도 수학에서는

내신과 수능은 거의 반대방향입니다


여러분이 지난 몇 달 간 어떤 공부를 해왔건

2021년 5월에 공개한 평가원 예시문항들을 다시 들여다 보세요

그 문항이 그 몇 달 전보다 더 깊게 보이고

안 보이던 연결이 보이고

관련된 교육과정이 보이고

이 문항을 통하여 묻고 싶어하는 수학적 태도가 보이면 

못 풀던 고난도 문항이 여전히 안 풀려도 여러분은 옳은 길을 걸어온 겁니다


인생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정직하게 걷는 겁니다

왜 결과를 두려워합니까

결과에 오만해지거나 비굴해질까만 두려워하면 된다고 맹자가 말했었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뇌우가 울부짖는 날

그 때조차도 푸른 하늘은 항상 그곳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못 할게 뭐 있습니까

이것도 어차피 그저 딱 여러분만큼 힘들고 외롭고 희망을 걸다 좌절을 하곤 하는

그런 사람 간의 경쟁일 뿐인데

여기는 신도 악마도 필요 없고

그저 정직한 땀과 피가 필요한 벌판

거기에 저나 여러분이나 딛고 있는 맨발







#20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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