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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칼럼[PSTP] 혁신가의 역설

황준규
2023-02-13
조회수 830


어떠한 이유에서건 담배에 의존하던 학생이

역시 어떠한 이유에서건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고 합시다.


이미 충분히 중독된 상태의 학생이라

그 학생에게는 끔찍한 금단증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시간, 3일, 3주

이렇게 세 번의 큰 고비를 넘기고 '아, 나도 담배를 끊었나'하던 어느 날.


이 학생은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고

술을 마셨고

친구들이 담배를 권했고

술김에 한 대 피웠고

그리고 그렇게 그 힘든 금단증상을 견뎠던 게 무너졌습니다.

오히려 담배를 끊는 일은 더 어려워졌지요.


질문이 있습니다.

이 학생이 담배를 끊는 것보다 쉬운 일은 무엇일까요?


. 


이 학생이 담배를 끊는 것보다 쉬운 것은

담배와 술을 함께 끊는 것입니다.

'아니, 담배 하나 끊는 것도 어려운 데, 담배와 술을 함께 끊으라고?'

이런 학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이 학생은 담배와 술이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 적어도 이 학생의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담배와 술을 함께 끊는 게 더 쉽습니다.


자, 또 질문이 있습니다.

이 학생이 담배와 술을 함께 끊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무엇일까요?


.

.

.

Bingo.  담배와 술과 그 중학교 동창들을 함께 끊는 것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담배건 술이건 중학교 동창이건 끊는 게 무조건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담배를 꼭 끊겠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게 당신에게 좀 어렵다고 한다면,

그거보다 쉬운 일은 담배와 연결된 것을 함께 혁신하는 것입니다.

습관을 고치는 건 쉽지 않은데, 약물중독자가 정상인이 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학생에게는 현실적으로는 두개의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담배와 술과 중학교 동창을 함께 끊어내던가

아니면, 그렇게 약물에 중독되어 담배가 당신을 피우도록 내버려 두던가


......................


이것을 '혁신가의 역설(innovator's paradox)'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 '발명가의 역설(inventor's paradox)'이라고 하지요.  

누가 언제 만든 말인지 모를 정도로 예전부터 내려오던 말이지만

수학자 G.Polya는 그의 책 'How to Solve It'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중에 나온 우정호 교수님 번역이 형편 없으니 제가 몇 줄 옮깁니다.


......


Inventor's Paradox.  The more ambitious plan may have more chances of success.

발명가의 역설.  더 야심찬 계획이 성공할 확률이 더 클 수 있습니다.


This sounds paradoxical.  Yet, when passing from one problem to another, we may often observe that the new, more ambitious problem is easier to handle than the original problem.

이건 역설적으로 들리죠.  허나, 이런 경우를 자주 봅니다.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넘어가게 될 때, 새롭고 더 야심찬 문제가 원래 문제보다 다루기 더 쉬운 경우 말이에요.


More questions may be easier to answer than just one question.

더 많은 의문들이, 단지 한 의문보다 대답하기 쉬울 수 있는 경우처럼요.


The more comprehensive theorem may be easier to prove, the more general problem may be easier to solve.

더 포괄적인 정리가 증명하기 더 쉬울 수 있듯이, 더 일반적인 문제가 풀기 더 쉬울 수 있습니다.


The more ambitious plan may have more chances of success provided it is not based on mere pretension but on some vision of the  things beyond those immediately present.

더 야심찬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어요.  그 야심이 그저 말뿐인 가식에서 나온 게 아니라, 눈앞의 현재를 넘어서 사물에 대한 어떤 통찰에 기반한 거라면 말이죠.


...............................


Polya가 말하는 건 이런 겁니다.

우리가 못 풀어내고 있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체념하고 좌절하라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변화시켜 보라는 것이며,

변화를 할 때 문제를 축소할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키워서' 더 야심찬 목표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

그 과감한 도전을 할 때, 우리는 기존의 억압되어 있고 잊혀지고 가리워진 성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그 억압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참, 아 이게 본질이었지'하고 깨닫게 될 거라는 것.


이렇게 수학의 본질은 속박과 변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박에서의 해방(disentanglement)에 있다는 것, 

나아가 이런 수학의 측면이 대중에게 한 번도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는 것을 Polya는 말하고 있습니다.


....................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특히 수능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태도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피상적인 공부법만 물어보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공한 자의 공부법을 참고해서

몇 문제만 더 맞추면 된다는 사고는

막상 그 몇 문제 더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나면 

그 공부법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건지도 알게 됩니다.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결국 미국의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번역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수능시험은

그 학생의

'학문적 능력 테스트'라고요.

그런데, '그건 학문이고, 이건 시험요령이야' 이런 얄팍한 태도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건 비참한 것입니다.


'학문'이라는 게 무슨 비현실적이거나 현학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렇지 않아야 학문입니다.

제대로 된 선생이라면

자기의 분야에 대해서

이 과목은 이런 것이며

이 시험은 이런 것을 묻기 위함이며

그러기 위해 학생들은 이런 것을 준비해야 하며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더운 피가 흐르는 학생이라는 인간은

각자의 공부 해온 학력과, 인지구조까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생의 수업은 귀에 들어오고

어떤 선생의 수업은 '나랑 잘 안 맞는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수능 시험 또한 매우 다양한 스타일의 교수들이 출제한다는 걸요.

그러니, 

댜양한 선생들, 특히 나랑 덜 맞아 보이지만 배울 점이 있는 선생의

수업을 내 걸로 만들 때 학생은 발전합니다.


모든 학생에게 인기 없는 선생은 아마 별볼일 없는 선생일 수 있습니다.

허나, 모든 학생에게 인기 있는 선생도 별볼일 없는 선생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면, 정말 좋은 수업은 사실 어떤 레벨의 학생에게건 그 수업의 내용을 배우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가르치기 쉽고, 배우기도 쉬운 책이 있으면 태워버려라.  거기서 너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고 Whitehead는 말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귀에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

공부법 쇼핑하지 마세요.


몇 문제 더 맞추기 위해 이것만 하면 된다고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런 거짓말 하는 자를 멀리 하세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서

지식은 탄생하였고

지식은 살아있습니다.


그 재미를 놓치고

무슨 '학문적 능력 테스트'를 잘 보기 바랍니까?


혁신?

우리는 굳이 혁신할 필요 없습니다.

인생에서 혁신보다 중요한 가치는 많습니다.


허나,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의 수능 점수에서

혁신을 원한다면

명심하세요.


혁신의 革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긴다는 것이고, 新은 새롭다는 겁니다.

새로울 신(新)이라는 것은 辛, 즉 고통스러우며, 斤, 즉 도끼질 같은 겁니다.


도끼질 해 보았으면 알 겁니다.

도끼질은 톱질이나 망치질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톱질이나 망치질은 좀 살살 여러 번 할 수도 있고, 좀 힘을 들여 적은 횟수로 할 수도 있어요.

오늘 못한 거 며칠 후에 해도 됩니다.

허나, 도끼질은 all or nothing입니다.  도끼로 장작 패는 거 생각해 보세요.

한 번에 제대로 쪼개든가, 아니면 하지 말든가 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도끼 휘두르면 도끼날 나가거나 장작감만 부서지거나 심지어 나나 주변 사람이 다쳐요.

새롭다는 건 그런 겁니다.  알겠죠?

그 통찰이 우리의 말 속에 '新' 이라는 통찰로 배어 있습니다.


다시 말할 게요.

의대 간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의대 못 간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고

수능 잘 본다고 훌륭한 인생도 아니고

수능 못 본다고 비난 받을 일도 아닙니다.


허나, 당신이 원하는 게 혁신적인 결과라면

그 대상이 수능, 즉 '학문적 능력 테스트'라면

그 학문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 과목을 전공하고 일생을 가르쳐온 선생들에게

겸허한 자세로 배우세요.


자신을 혁신하세요.

자신의 낡은 가죽을 벗기세요.

고통스러운 도끼질을 30이나 50이나 70이나 95가 아닌 100의 도끼질을

그 번뜩이는 날을 보여 주세요.


특히, 입시를 다시 시작하게 된 학생들

당신들의 올해가

당신들이 걷고 있고

앞으로도 걸을

지식과 학문과 배움의 열정으로

그 기쁨으로 가득하길


당신이 고뇌에 차 있고

당신이 고통스러운 만큼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가장 당신다워야 하며

인간은 고통 속에서 빛난다는 걸 잊지 말기를


........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그 쇠락한 동네가 Whitman이 말년에 시를 쓰며 살던 곳이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났습니다.


Walt Whitman의 다음 글을 드립니다.



This is what you shall do; 

Love the earth and sun and the animals,

despise riches, 

give alms to every one that asks, 

stand up for the stupid and crazy, 

devote your income and labor to others, 

hate tyrants, 

argue not concerning God, 

have patience and indulgence toward the people,

take off your hat to nothing known or unknown or to any man or number of men,

go freely with powerful uneducated persons and with the young and with the mothers of families, 

read these leaves in the open air every season of every year of your life, 

re-examine all you have been told at school or church or in any book, 

dismiss whatever insults your own soul, 

and your very flesh shall be a great poem and have the richest fluency 

not only in its words but in the silent lines of its lips and face and between the lashes of your eyes and in every motion and joint of your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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